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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전후 70년, 마이즈루는 지금

 일본해 (동해)와 마주하고 있는 교토부 마이즈루시에 있는 '마이즈루 히키아게기념관(귀환기념관)'의 전시 자료가 10월 초, 유네스코의 세계 기억 유산(세계의 기억)의 등록이 결정되었다. 올 봄, 세계 기억 유산 등록의 기대가 높은 마이즈루시를 두번에 걸쳐 방문하여 히키아게기념관과 '빨간 벽돌 공원'을 견학하고 '전후 70년'을 생각해 봤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종결과 함께 해외에 남겨진 일본인은 660만명이라고 한다. 대륙에서 패전을 맞은 병사들은 무장 해제되었으며 구 소련의 강제 수용소 (라게리)에 억류되었다. 강제 수용소는 시베리아뿐만 아니라 중앙 아시아, 모스크바 근교에서부터 북극권에 이르는 약 1800개소. 삼림 벌채등의 강제 노동이 주어져 영하 30도 이상의 극한과 기아, 병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사망했다. 쇼와 20년 (1945년) 10월부터 억류된 자의 귀환사업이 시작되어 마이즈루항에는 쇼와 33년 (1958년) 9월까지 13년간 약 66만명의 귀환자와 약 16,000위의 유골이 돌아왔다. 쇼와 25년 (1950년)부터는 유일한 귀환항이었던 마이즈루로 '고안마루'와 '다카사고마루'가 귀국하는 귀환자를 옮겼다≫

 마이즈루 히키아게기념관에는 시베리아 억류의 자료 약 1만 2천점이 전시되어 있다. 강제수용소에서 고통스러운 생활을 글과 와카(시)로 나타낸 『시라카바(자작나무)일지』는 시라카바(자작나무)의 껍질을 벗겨 빈 캔의 끝을 날카롭게 깍아 만든 팬인 스스를 잉크 대신으로 기록했다. 펠트로 만든 구두나 귀중한 검은 펜과 교환해 소련군 병사로부터 입수한 소매없는 방한복, 마이즈루항의 안벽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속절없이 기다리며 '안벽의 어머니'라는 노래의 모델이 된 하시노 이세씨의 편지, 스케치화, 인형으로 재현시킨 억류자....
 두번째로 마이즈루를 방문했을 때는 히키아게기념관은 세계 기억 유산 등록을 목표로 개수중이었기 때문에 자료의 일부는 마이즈루 빨간 벽돌 파크 3호동 안에 전시되어있다. 비참함에 가슴을 쳤다. 연세가 드신 여성이 조용이 눈물을 훔치셨다. 젊은 커플도 진지한 모습으로 보고 있었다.
 내관자 중 한명인 사메지마 아이코씨 (81세) = 동오사카시 재주 = 는 종전 다음 해인 쇼와 21년 (1946년), 13세 때 정주 (현 북한)에서 귀환했다고 한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현지에서 연행되어 연락이 끊겼으며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 5명이 남겨졌습니다. 현지의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근처에 있던 신사는 불태워졌습니다. 그 후 돈을 모아 얻은 작은 배 3척으로 탈출을 하고 20일 후에는 인천에 도착. 거기서 미군의 상륙용 함정으로 부산까지 가서 부산에서 '고안마루'로 하카타에 도착했습니다.
 귀환자를 맞이한 마이즈루항의 다이라산바시의 주변에서는 신문사의 보도 경쟁이 펼쳐졌다. 신문사의 카메라맨이었던 와타나베 테이지 (87세) = 오사카 · 모리구치시 재주 = 는 '마이즈루항에 입항했던 『고안마루』에 전세선이었던 소형배를 타고 트랩에 매달려 귀환자로 북적이는 갑판에 제일 처음으로 올랐습니다. 허리에 꼽고 있던 만개의 벚꽃 가지를 소녀에게 주고 활짝 웃는 표정의 사진을 특종으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부의 기자였던 남성의 술회.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적화교육』을 받았던 귀환자가 있었다. 그 사람을 쫒으라는 현지 데스크로부터의 지시가 있었다.' 귀환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인 것이다.

 히키아게기념관과 함께 마이즈루시가 관광지로 힘을 쏟고 있는 곳이 빨간 벽돌 파크. 구 해군의 벽돌로 만든 창고 12동의 내부를 개장해 전시회장, 이벤트회장, 레스토랑, 매점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 중 8동은 나라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빨간 벽돌 창고군은 전국 각 지에 있지만 '구 해군의 빨간 벽돌 창고군은 마이즈루뿐이다'라고 한다.
 그 곳에서는 해군카레와 '마이즈루의 니쿠자가 (감자와 고기 조림)도 마이즈루의 명물로 관광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구 해군은 매주 금요일에 카레라이스를 먹는 것이 전통이었다. 승조원은 긴 양상 생활에서는 요일의 감각이 없어진다. 식사에 카레라이스가 나요면 '아 오늘이 금요일이구나'라고 알 수 있다. 니쿠자가는 러일 전쟁에서 발틱함대를 격파한 도고 헤이하치로가 해군 마이즈루 진수부 초대 장관이었을 당시 영국 포츠머스 유학 당시에 먹어본 비프시츄를 조리원 부하에게 만들게 했는데 영국풍의 조미료가 없어 간장과 설탕을 사용한 니쿠자가라는 새로운 요리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해군 진수부가 세워지며 해군 공창에서 전함 야마토와 항공모함 아카기를 만든 구레 (히로시마)도 '우리가 원조다'라며 손을 들었다. 도고가 구레 진수부에서 참모장이었을 당시 니쿠자가가 탄생했다고 한다.
 해군 카레와 니쿠자가의 원조 논쟁이 화제가 된 구르메와 포식. 70년 전 강제 수용소에서 기아로 고통받다가 조국의 땅을 밟은 귀환자, 또한 그들을 맞이한 그 토지의 사람들도 식량난에 허덕이던 종전 직후. 종전 70년의 세월을 다시한번 느끼는 바이다. (사토 다카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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